사랑이여, 내게 와줘

아사기리 코하쿠/AU

✨파라로스 AU - 하기오테스✨ Part. 2

2024. 5. 21. comment

 

“가브리엘.”

 

사뿐히 날아온 미카엘이 날개를 접으며 옆에 내려앉았다. 제 무릎을 끌어안고 저 구름 너머를 내려다보던 가브리엘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내보이려다 입꼬리가 흔들리고 만다. 잠시 더 노력해보는 것 같더니 포기한 듯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가브리엘이 시선이 가 있는 쪽을 흘긋 본 미카엘이 조용히 물었다.

 

“아직이야?”

 

응. 작게 목을 울려 소리를 낸 가브리엘이 관성적으로 제 신전 쪽을 바라봤다. 언젠가 아자젤이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다고 했던.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잃어버리고 텅 빈 장례식에 참석했던.

 

하기오테스가 실종되고 난 후로 펠리온이 그 자리에 올랐으나 록시의 사망이 계기가 되어 벨리알과 함께 타천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오른 대제사장은 그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전령의 방문을 잘 견디지 못했다. 뜻을 전하고 싶어도 마음껏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 천사의 타천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운데 그조차 여의치 않게 되자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다툼과 불화, 목적 없는 전쟁까지.

 

천사들은 지나치게 바빠졌으나 가브리엘은 그 와중에도 하기오테스의 영혼을 찾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신을 사랑했고, 신의 말씀을 사랑했고, 신의 말을 전하는 전령도 사랑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사랑했다. 그 방대한 신성력은 그녀의 올곧은 마음과 사랑에 대한 신의 보답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서 제게 웃어 주는 것을 늘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그녀의 미소를 곱씹다가, 선명한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말았다. 그 다음 생각은 당기지도 않았는데 주르르 따라나왔다. 그렇다면 하기오테스는 내게서 도망친 걸까? 그게 죄라고 생각해서? 정말이라면 그건, 내 탓일까?

 

알 수 없다. 그 무엇도. 그는 대천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되찾으면 알 수 있을지조차.



하지만 그 고민은 곧 해결되었다. 안타깝게도 좋지 못한 방향으로.

 

“...하기오테스?”

 

지옥의 초입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소멸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별안간 제 앞으로 뛰어든 자가 쏘아져 오는 불의 화살을 향해 빛을 뿜어냈다. 불꽃이 별빛처럼 튀고 뜨거운 열기가 비산하는 가운데서, 가브리엘은 그녀를 보았다.

변함없는 황금빛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처음 보는 검은 옷차림을 한 처음 보는 등. 상처입은 가브리엘을 급히 당기는 미카엘의 팔을 뿌리치며 가브리엘이 이름을 불렀다.

 

“하기오테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돌린다. 붉게 물든 하늘과 구름, 어둑한 공기 사이로 그녀가 막아내고 있는 마법이 사방으로 튀면서 빛을 뿌렸다. 변함없이 빛나는 금빛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하기오테스가 미안함을 담아 미소지어 보였다. 그녀는 그대로였다. 검은 옷과, 검게 일렁이는 힘과, 머리에 달린 한 쌍의 뿔을 제한다면.

 

“가야 해, 가브리엘!”

 

미카엘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며 가브리엘은 멍하니 생각했다. 

 

그렇게 찾던 하기오테스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명백히 타천하고 만 모습을 하고선 왜 저를 지키는지.

 

아직 천사를 사랑한다면, 왜 타천했는지.



나 때문이야?



그건 의문이라기보다는 확신에 속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하기오테스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자꾸 뒤돌아보며 가브리엘이 날갯짓했다.





이번 싸움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에서, 가브리엘은 신에게 물었다. 대제사장이 어떻게 타천할 수 있냐고.

 

큰 신성은 타락할수록 큰 악이 되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가브리엘 신전의 대제사장만큼은 존재하는 이래 단 한 번도 그의 반대편에 선 적 없었다. 그를 거쳐간 모든 대제사장들은 전부 신성이 충만한 금빛 눈을 하고,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말을 온전히 전하며…

 

신은 가브리엘의 생각을 모두 읽은 것처럼 가엽다는 듯 미소지었다. 천사가 스스로 깨닫고 나서야 신은 말해 주었다.

 

[인간들을 위해 너를 안배하고,

너를 위해 그 애를 안배했다.]

 

[그 애는 천국의 정원에서 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있었음에도 네 곁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단다.]

 

자연히 의문이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왜?

 

신은 가브리엘의 마음에 답했다.

 

[그것은 네가 찾아야 할 답이지.]

 

그를 마지막으로 신은 더이상 답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대답없는 신을 뒤로 하고 나왔다.

 

가브리엘은 스쳐간 모든 대제사장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모두 같은 빛을 띄고 있는 것은 그저 방대한 신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야 그들만 갖고 있는 빛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하기오테스의 영혼이 처음부터 하나였다면, 이번 사태는 어쩌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맹목적인 섬김을 알면서도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그녀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그녀의 타천에도 이유가 있다면. 그로서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영원히 그녀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생각은 끝없이 아래로 뻗어나갔다. 가브리엘은 애써 고개를 흔들어 그를 멈췄다.





“미련이 남았나? 대제사장.”

“그럴 수밖에요.”

 

루시퍼도 하기오테스도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을 만나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하기오테스가 그의 편에 설 것이란 것 정도는.

 

생을 반복하며 지나치게 방대해진 신성력은 단 한 점의 타천조차도 견디지 못했다. 극심한 고통과 소멸의 위협 앞에서 하기오테스는 간절하게 생존을 바랐다. 자신이 천상으로 올라가 다시 그의 곁으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던 이번 생의 그녀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스스로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제 것과는 달라도 맹목적인 감정임을.

 

저를 마주하고 무너지는 눈동자를 보고서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저는 그의 구하지 못한 영혼이, 또 다른 상처가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런 꼴을 하고 그를 만나려 했던 게 아니었다. 곁에 있고 싶다는 소망이 이런 형태로 돌아올 줄 미리 알았다면, 절대 꿈조차 꾸지 않았을 텐데.

 

뒤늦게서야 하기오테스는 차라리 소멸하는 것이 그를 위한 선택임을 알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사만 건네자. 인간이 존재했던 오랜 시간 동안 내내 그를 사랑했던 나를 위해 딱 한 점의 미련만 남기자. 행방조차 몰라 영원히 찾지 않도록. 모두를 사랑하는 천사가 원래대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천사님.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멋대로 사랑하고 멋대로 타천해버린 건 저인걸요. 언제나처럼 인간을 사랑해 주세요.

 

부유하는 빛의 조각이 그의 주위를 맴돌다 점점 퍼져 갔다.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각난 하기오테스의 영혼들이다. 수없이 많은 생을 반복하며 영혼 깊숙한 곳에 차근차근 쌓아 온 신성력을 한번에 터뜨려 악마와의 계약의 사슬을 파기한 하기오테스는 일대를 정화하며 흩어졌다.

 

결국 너는.

 

멍하니 서 있는 가브리엘을 한참 지켜보던 라파엘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양된 어조로 말했다.

 

“가브리엘, 빛을 만들어 봐라!”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는 라파엘의 말을 따랐다.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부유하며 흩어지려던 빛가루들이 그가 만들어 낸 빛무리를 중심으로 천천히 휘몰아쳤기 때문에. 

 

하기오테스에게 가장 익숙한 신성한 빛. 세상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순간부터 함께해 온 빛. 제 손 안으로 모여드는 영혼을 소중히 감싸안은 가브리엘은 천계로 돌아가 그의 정원에 그녀의 자리를 만들었다.

흰 튤립 봉오리 안에 잠든 영혼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본래의 형체를 되찾게 된다.

 

꽃이 피고 자아를 되찾는 순간, 그 영혼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원을 떠나기를 선택했다.

 

모든 것을 잊고 그의 곁에 영원히 있기를. 천사가 아닌, 그가 사랑하는 인간 중 하나로써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를.

 

그들은 서로 얽힌 나선의 맞은편에 서서 서로를 마주했다.

언젠가는 이 둘도 결실을 맺을지 모른다.

세상이 평화로운 때. 인간들이 모두를 사랑하는 신의 뜻을 이해하고 그와 같이 살아갈 때.

신의 뜻을 전하는 전령이 무용해질 때쯤에.



무한한 궤도를 돌고 돌아 끝내는 당신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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