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내게 와줘

아사기리 코하쿠/AU

🥀블랙 가든 AU-하모니아🥀

2021. 10. 31. comment

하모니아 에레모스 Harmonia Eremos

 

가문이 몰락하며 홀로 남겨진 이후 힘겹게 살아왔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던 저택과 비슷한 곳, 물려받은 피아노와 닮은 것이 정원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끌리듯 저택의 문을 두드린다. 오랜 시간 동안 에레모스 가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일종의 의지를 가지게 된 피아노가 정원에 놓이게 되면서 정원의 의지와 공명하여 제물을 끌어당길 에레모스의 핏줄을 부른 것이다.

익숙한 저택과 되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피아노를 만나고 기뻐하는 하모니아에게 밤의 정원에 가지 말라고 말하는 미카는 눈엣가시일 뿐이었으나 미카는 굴하지 않고 하모니아를 따라다니며 감시한다. 밤이 되면 더욱 강해지는 정원의 마력과 피아노의 부름에 홀리듯 방문을 나서기 일쑤였지만 늘 미카에게 막혀 방안으로 돌려보내지거나 방문이 잠겨 있기를 며칠째, 하모니아는 미카에게 물었다.

 

"밤의 정원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막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싸늘한 반응만 하고 대답도 없고."

"너는 이상하지 않아? 낮에는 멀쩡하게 여기에 잘 있으면서 밤만 되면 정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처럼 구는 게."

"......"

 

되려 던져지는 질문에 고개를 기울인다. 이상한 일인가? 그래, 이상한 일이었다. 낮에 정원에 있다가도 분명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제가 머무는 방으로 돌아오는데 왜 자정이 가까워지면 또다시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그러나 생각은 깊게 이어질 수 없었다.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는 약간의 파문을 일으키고는 금세 그 안으로 빨려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가만 깜박이던 금빛 눈은 그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밤의 정원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막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싸늘한 반응만 하고 대답도 없고."

"......"

"너는 불로불사의 삶을 원해?"

 

짧은 침묵을 지나, 미카는 방금 같은 질문을 듣지 않은 것마냥 태연하게 다른 질문을 또 던졌다. 그 터무니없는 말에 간만에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하모니아가 웃었다.

 

"그런 건 애초에 없는걸. 나는 과거의 추억에 휘둘리기도 바빠서 허상에 매달릴 여유가 없어."

 

미카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보다가 무언가 벼락처럼 깨닫고는 미소지었다. 하모니아는 그렇게 천진하게 웃는 미카의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직 그들이 정원에 사로잡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미카가 만난 최초의 순수한 인간. 불로불사에 관심 따위 없으나 다른 이유로 결국 그들의 곁에 남고 말 차후의 희생자. 그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정원과 피아노로부터 그녀를 지킬 각오를 하고 가능하다면 저택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결국 정원에 뜻에 거스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시간끌기에 불과하며 미카가 하모니아를 막지 않는 날 그녀 또한 같은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 또한.

 

몇 주가 더 지나고 이 이상 버텨봤자 더 미움받을 뿐이며 끝나지 않는 일상에 가둬 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바질의 말을 들은 날, 고민하던 미카는 하모니아의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원을 향해 걷는 그녀를 따르다가 정원에 다다르자 독약을 건넨다.

 

"불로불사 같은 것 믿지 않는다고 했지. 바라지 않을 테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어. 정원도 너의 피아노도 너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 있는 시간, 대화 중 끊기던 이상한 말들. 이상하리만치 해야만 했던 행동들. 벗어날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모든 것을 깨닫고 만다. 여태껏 주변에 휘둘리며 간신히 살아온 짧은 생의 마지막마저 그녀가 모르는 새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받아든 자그만 병은 서늘했으나 담긴 의미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모니아의 인사는 안녕, 이었으나 미카는 또 봐, 하고 답했다.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정원과 얽힌 그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그녀는 끝을 바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이곳에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나.

 

온기를 잃어가는 손을 잡고 끝내 차갑고 딱딱한 나무토막처럼 변할 때까지 미카는 하모니아의 곁을 지켰다. 그녀가 묻힌 자리에서 푸르게 빛나는 장미가 피어오른 날, 정원의 피아노 의자에서 눈을 뜬 하모니아는 저를 바라보는 미카를 만났다.


♬Forbidden memory

저택의 메인 홀 벽면에 자리한 파이프오르간이 하모니아가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다. 낮에는 정원보다 저택에서 지내며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밤이 되면 무언가에 홀리듯 정원의 유리온실 안 피아노에 있고는 했다. 정확히는 벗어날 수 없었다. 정원의 마력이 강해지는 때는 피아노의 의지가 발현되는 때이기도 했으므로. 저택에 방문한 자들은 오르간에 앉아 있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하모니아의 행방을 묻고는 했으나 저택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지 못하고 타의에 휘둘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동시에 싫어하지만 이미 이 저택에 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된 것부터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결국 영영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아노로 무수히 많은 희생자를 밤의 정원에 불러들이며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무엇을 잘못했던 것인지. 행복했던 때의 그림자를 쫓아 이 정원에 온 것이 영원히 고통받을 만한 큰 죄였는지.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불로불사 같은 것을 얻으며, 그를 위해 사람을 잡아먹어 가며 언제까지 존재해야 하는지.

 

젖은 흙이 덮인 봉분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하모니아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면 덜 괴로울 텐데. 그 울음을 들은 미카는 그녀에게 약을 건넸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야. 네가 이걸로 조금이나마 편해진다면, 이걸 써.

 

벼랑 끝에 몰린 사람에게 손이 하나 내밀어진다면 누구든 그것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존재가 되기 이전부터 곁을 맴돌며 손을 뻗어왔던 미카에게 마음이 쏠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절대 나를 놓지 마.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추한 괴물이라는 것을 잊어도, 어젯밤 이 정원에 사람을 밀어넣은 덕에 더 살게 된다는 것조차 잊어도. 너만큼은 절대 나를 비난하지 마.

 

대답은 없었다. 단지 다정한 손길이, 따스한 품이 그녀를 당겨 토닥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암울한 오르간 소리는 더이상 저택에 울려퍼지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미카가 건네는 약을 마시고 다음날이 되면 곁에서 눈을 떴다.

잠깐의 괴로움도 결국 별 것 아니다. 우리는 추악할지언정 혼자는 아니고, 이 정원이 힘을 잃을 때까지 서로를 잃을 일은 없다. 즐거운 멜로디에 이끌려 몇 명의 인간이 정원에 발을 들이더라도 하모니아의 곁에는 미카가 있었고 미카의 곁에는 하모니아가 있었다.

 

그 때가 되면 나를 놔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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