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내게 와줘

유우야미 레나/AU

✨파라로스 AU - 레미엘(Remiel)✨

2024. 2. 7. comment

 

Remiel

 

어째서 이 세상은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행복한 세상이 아닌 걸까....



그는 기다리던 참이었다. 석양이 지는 인간계, 분홍빛으로 물든 언덕 위의 구름에 걸터앉아서.

가볍게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고 쏜살같이 무언가가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아자젤!”

“레미엘. 너무 빨리 날지 말라고 했잖아.”

 

으응, 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그러겠다는 소리 같지는 않다. 단단하게 받쳐 안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강아지마냥 볼을 부비는 모양새에 속절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마주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싱그러운 풀꽃 향이 종일 혹사했던 그의 심장을 달래듯 감돈다. 맞닿은 가슴에서 작은 새처럼 파닥거리던 심장이 그의 것과 비슷한 속도로 두근거릴 무렵에야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든 레미엘이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던 아이들 있잖아."

 

응, 가볍게 호응하고는 그녀를 고쳐 안았다. 어깨에 손을 얹고 그가 안아올린 대로 조금 높은 곳에서 눈을 맞춰온다. 사르르 눈을 휘며 빛이 나는 것만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오늘 그 애들에게 새 영혼을 데려다주고 왔어."

"그랬어?"

"응. 오래 기다렸는데 보내줄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마지막 키스를 해 주는데 너무 신이 나서 실수로 너무 깊게 누를 뻔했지 뭐야."

"그랬구나."

"...아자젤, 듣고 있는 거 맞아?"

 

조금 뾰로통해진 얼굴로 레미엘이 물었다. 정신없이 그녀를 바라보느라 대답이 건성으로 나갔음을 그제야 깨달은 아자젤이 듣고 있었어, 하며 웃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의심스레 쳐다보던 레미엘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맑은 웃음이 터졌다.

 

"귀여운 짓 한다고 안 봐줄 거야."

"제대로 들었어. 네가 말했던 그 애들한테 아이의 혼을 전해줬다는 거 아니야."

 

흥, 이번만 봐준다. 하며 미소짓는 입술에 한번 더 입을 맞췄다. 마저 아까 생명을 얻은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레미엘을 바라보는 아자젤의 얼굴에도 붉은 석양이 비친다. 땅거미 내리는 황혼의 시간. 그녀와 함께 맞이하는 하루의 마지막.어쩌면 이것이 그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레미엘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혼을 전해주는 일을 했다. 천계에서 가장 바쁜 천사 중 하나일 터다. 생과 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는 것이므로, 아자젤도 마찬가지로 바빴다.

하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은 늘 함께했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도 모두 나누려 했다. 영원한 삶이 약속된 이들 중에서도 그들만큼 서로의 존재 자체로 완벽해 보이는 자들은 없을 정도로.

 

그렇대도 그들은 결국 별개의 존재였다. 그 당시에는 그녀의 괴로움을 알지 못했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포개어 앉은 두 천사 위로 나뭇잎 틈으로 새어나온 빛무리가 아롱졌다. 축 처진 새하얗고 보드라운 날개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다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물음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조금 더 몸을 붙여 오며 자그마한 천사가 한숨을 내쉰다. 제 허리께에 둘러진 손을 잡고선 초조한 듯 손바닥을 매만졌다. 그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굳은살 박인 단단한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서로 증오하고 죽이는 게 괴로워."

 

그것은 모든 천사들의 공통된 괴로움이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이 감내해야 할. 

그리하여 가벼이 여겼다.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인간의 곁에 있었고, 그들의 첫 숨과 마지막 숨을 함께했고, 피 튀기는 전장에도 고요한 장례식에도 수없이 발을 디뎌 보았으니까. 그들은 모두를 사랑하는 천사이기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는 걸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오겠지."

"그럴까."

 

꼼지락거리며 가느다란 손가락이 얽혀 온다. 힘주어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아자젤은 생각했다. 품 안의 온기를 영영 놓고 싶지 않다고.

 

괜찮을 거야. 우린 앞으로도 계속 함께일 테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던 도중 우리엘이 급하게 그에게 전언을 보냈다. 불길하게 조여드는 뒷머리를 애써 무시한 채로 그는 모든 날개를 펼쳐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았다. 도착하기도 전에 아자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싱그러운 녹빛 기운. 다정하고 상냥한 그 빛의 일부가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우리엘을 보자마자 그녀를 보호하듯 그 앞에 선 아자젤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품에 안긴 조그만 영혼을 언제나처럼 소중히 보듬어 안은 채로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레미엘."

 

그가 왔어.

 

조심스레 양 팔을 벌리고 한 발짝 다가오는 아자젤을 피해서 한 발짝 물러난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행동인지 스스로 오히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미엘."

 

아자젤이 한번 더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검게 구불거리는 머리칼이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다. 양 손에 감싸안은 영혼의 이마를 맞댄다.

 

"이 애는 죽고 말 거야. 더이상 못 하겠어. 죽을 걸 알고도 보내줄 순 없어..."

 

"임무를 다해, 레미엘."

 

담담하게 충고하는 규율의 천사 우리엘의 목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거기 있는 그들 모두가 알았다.

임무를 다하지 않는 천사는 천사로서 존재할 수 없다. 우리엘은 그녀와 제 친우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하지만...

벌써 여섯 번째였다.

한 부부에게 여섯 번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오히려 운 나쁘게 생긴 쓰레기 취급하며.

이것뿐일까. 그녀 안에 쌓인 수없이 많았던 추악한 광경들을 보며 느낀 감정이 댐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죽고 말 걸 알면서도 보내야만 하는 게 괴로워. 죽일 걸 알았다면 탄생을 축복해주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게 괴로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러워.

나야말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첫 숨을 준 그분이 원망스러워...

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시지 않는 걸까.

 

그건 죄였다. 천사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다. 존재에 대한 의심, 그것을 행했다가 추방당한 선례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리하여 타락하기엔 레미엘은 너무도 선한 천사였다. 그녀의 칼날은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해 있었다. 세계를 사랑하는 법밖에 모르던, 사랑을 주는 법밖에 모르던 생명의 천사가 최초로 증오하게 된 대상은 유감스럽게도 자기 자신이 되고 말았다.

 

타락하지도 정화되지도 못한 천사. 신의 뜻이 아닌 길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곧은 자. 스스로의 안위보다도 두 힘의 충돌로 깨어질 듯한, 품에 감싼 태어나지 못한 작은 영혼을 더 위하고 만.

 

미안해, 아자젤.

 

작은 속삭임은 천둥처럼 내리꽂혔다. 그녀가 제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과 녹빛 바람이 그를 지나는 순간은 거의 동시였다. 레미엘의 상냥한 바람은 조금 전까지 검게 물들었던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마냥 가볍게, 춤추듯 휘돌며 그들을 스쳐 지났다.

 

세상을 돌보러 즐거이 날개짓 하던 그녀처럼.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던 천사들은 더듬더듬 걸음을 옮긴 아자젤이 깃털 더미 앞에 무너졌을 때에야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러 다가갈 수 있었다.

 

손도 대지 못하고 다만 웅크려 있을 뿐인 아자젤 앞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유일하게 남은 새하얀 깃털에 포근하게 감싸인 채 고요히 잠든 영혼만이 빛이 터져나온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자젤 그 자신마저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듬었던 영혼은 다른 천사의 손을 통해 세상으로 나갔다. 생명의 천사가 비운 자리는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빈 적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메워졌다. 

 

그녀의 이름조차 모두에게 잊혀진 것처럼, 어디에서도 불리지 않았다. 

 

그의 구하지 못한 영혼.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

심장을 할퀴고 지나간 흉은 영영 사라지지 못할 테고, 남은 시간 동안 그는 일말의 희망을 찾아 발버둥칠 것이다.

 

그곳이 지옥 밑바닥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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