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내게 와줘

아사기리 코하쿠

사랑하는 작은 아이

2024. 4. 30. comment

야야모 @J_Yaya_S

 

그 애를 본 건 어머니를 따라 처음 간 고아원에서였다. 소개받기 전에 안쪽을 궁금해하자 안아올려 보여 주셨던 창 너머로 그 애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애의 동그란 뒷통수와 말랑한 볼이었다. 간식 시간인지 각자 조그만 식판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한껏 입에 담아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고개를 흔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유난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원래 코하쿠 또래의 나이 아이들은 고아원에 가면 안 된다. 다만 재단에서 후원하는 곳이어서 예외적으로 함께 간 것이었으나 청소나 돌봄 등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한 것들은 어린 코하쿠로서는 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영아반에서 아이들과 노는 것이 주된 일과가 되었다. 그때 이미 천재라 불리던 코하쿠는 콩쿨용 연습곡들을 잔뜩 연주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늘 동요를 연습해 가곤 했다.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동화책을 읽고, 블럭을 쌓으며 지내던 어느 날, 코하쿠가 연주하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잠든 아이들 사이에서 자그만 아이가 하나 꾸물꾸물 일어났다. 아장아장 걸어와서 피아노 의자를 지지대 삼아 서서는 코하쿠를 빤히 올려다본다.

 

“웅니.”

“왜? 야야.”

“나두 할래.”

“안 돼, 야야도 자야지.”

“웅니는?”

 

나는 낮잠 안 자도 괜찮아, 라는 말은 먹히지 않았다. 아이는 선택지를 딱 두 개 주었다. 같이 자거나, 같이 피아노를 치거나. 잠 잘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하고서 제 치맛자락을 꼭 쥐는 모습에 웃어버리고 만 코하쿠는 의자에서 내려와 야야의 손을 잡았다.

 

“옆방으로 갈까? 친구들은 자고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야야가 코하쿠를 따라 걸었다. 보들보들하고 말랑한 작은 손이 코하쿠의 손을 힘주어 잡아 온다. 자그만 야야의 걸음에 맞춰 조금 걸어 도착한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들고, 가볍게 날리는 쉬폰 커튼 새로 볕이 일렁였다. 크지 않은 업라이트 피아노 의자의 오른쪽에 야야를 앉히고 코하쿠도 자리에 앉았다.

야야는 발을 동당거리며 피아노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코하쿠가 건반에 손을 올려도 된다고 허락해 주기를 기다리듯이, 혹은 어떻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기를 기다리듯이 눈을 마주쳤다.

 

반짝이는 눈망울이 기대를 가득 담고 있었다. 야야는 평소에도 늘 피아노 치는 코하쿠 가까이 있고 싶어했다. 친구가 밀어도, 코하쿠의 손을 뺏겨도 한결같이. 내 자리라고 울음을 터뜨리고 얼굴이 엉망이 되면서도.

 

생판 타인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받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코하쿠는 어려도 그것을 알았다. 같은 단상에 선 친구들에게 건네받는 꽃다발도, 어른들이 지어주는 미소조차도 무조건적인 애정은 없었다. 코하쿠는 무대 위에 서서 행복하게 웃으면서도 그 속을 볼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야야의 눈동자는 달랐다. 올곧게 코하쿠가 비치는 싱그런 눈동자는 행복과 기대와, 그녀를 향한 애정만을 담고 빛나고 있었다. 야야는 사랑을 원없이 받아본 적은 없으면서 사랑을 끝없이 주는 법은 원래부터 알고 있는 아이 같았다.

 

그리하여 코하쿠는 야야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그 애의 눈망울을 마주하면, 파문도 일지 않는 호수처럼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짚었다. 음이 하나 통 튀었다. 그것만으로도 꺄르륵 웃는 야야를 보며 여럿이 함께 불렀던 노래를 천천히 시작했다.

 

구름이 흘러가고 빛이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랄랄라

무지개가 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있어

너의 너의 기분도 개이고

분명 내일은 날이 좋을 거야…

 

야야는 둘이 노래해서 좋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도 했다.

 

앞으로 자주 하자, 둘만의 비밀이야. 피아노도 알려줄게.

 

야야는 헤실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펴고 손을 쭉 내밀었다. 그 자그만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어기면 바늘 천 개 먹기.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고서는 이제야 잠이 오는지 야야가 하품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이제 자러 갈까?”

“웅니랑 같이.”

“응, 같이.”

 

친구들이 잠든 곳으로 돌아와 야야의 이부자리 옆에 함께 누워서 코하쿠가 야야를 가만가만 토닥였다. 아이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더니 그제서야 품으로 파고들었다. 코하쿠는 제게 안긴 작고 따스한 몸을 마주 꼭 끌어안으며 작은 다짐을 하나 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모두 알려줄게. 네가 받고 싶어 하는 사랑도 내가 줄게. 

너만을 온전히 사랑해 주는 가족이 생길 때까지, 가능하다면 그 이후에도.

 

누구든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너는 꼭 행복해질 거야.

 

분명 내일은 날이 좋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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